끄적/심리학

[사랑의 기술 1 (에리히 프롬)] 사랑의 이론 - 인간의 본능과 갈망

ebang 2023. 1. 1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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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어떠한 이론이든 인간른으로부터, 곧 인간 실존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랑, 또는 사랑과 비슷한 것을 동물에게서도 발견하지만, 동물의 애착은 동물의 본능적 기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엔 다만 이러한 본능적 기구의 잔재가 작용하고 있음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의 실존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인간이 동물계로부터, 곧 본능적 적응의 세계로부터 벗어났고 자연을 초월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그러나 한번 자연과 결별하면 인간은 자연으로 되돌아 가지는 못한다. 일단 낙원 -자연과의 본래의 합일 상태-에서 쫓겨나면, 다시 돌아가려 해도 불타는 칼을 가진 케루빔 천사가 길을 가로막는다. 

인간은 철저하게 생실한 전 인간적 조화 대신에, 이성을 발달시키고 새로운 조화, 곧 인간적 조화를 찾아내면서 오직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개인으로서든 인류로서든 결정되어 있는 본능처럼 결정되어있는 상황으로부터 비결정적이고 불확실하며 개방적인 상황으로 쫓겨난다. 확실한 것은 과거뿐이고 미래에 확실한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아는 생명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동포를,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미래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 분리되어 있는 실재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자신의 생명이 덧없이 짧으며, 원하지 않았는데도 태어났고 원하지 않아도 죽게 되며,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보다 먼저 혹은 그들이 자신보다 먼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의 인식, 자신의 고독과 분리에 대한 인식, 자연 및 사회의 힘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인식, 이러한 모든 인식은 분리되어 흩어져 있는 인간의 실존을 견딜 수 없는 감옥으로 만든다. 인간은 이 감옥으로부터 풀려나서 밖으로 나가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들과, 또한 외부 세계와 결합하지 않는 한 미쳐버릴 것이다. 

 

분리 경험은 불안을 일으킨다. 분리는 정녕 모든 불안의 원천이다.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내가 인간적 힘으르 사용할 능력을 상실한 채 단절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부력하다는 것, 세계 -사물과 사람들-를 적극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으르 의미한다.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나의 반응 능력 이상으로 세계가 나를 침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분리는 격렬한 불안의 원천이다. 게다가 분리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일으킨다. 

...

 

- 1장 제일 첫 페이지부터의 내용 

 

이 책의 1장에서 말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위에 나와있는 분리 상태를 극복해서 고독이라는 감옥을 떠나려는 욕구이다. 

 

그리고 그 욕구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대답하는 과정이 곧 인간의 역사이고, 그 방법은 인간의 희생, 사치에 탐닉함, 금욕적인 단념, 예술적 창조, 신의 사랑, 인간의 사랑 등 다양하다. 

 

작가는 그 방법들로

첫째, '진탕 마시고 떠드는 상태', '민족의 의식',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 , '성적 도취',와 같은 도취적 합일'

둘째, 도취적 합일과는 정반대인 '집단과의 일치에 바탕을 둔 합일'(관습, 관례, 신앙),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조적 활동'을 제시했다. 

 

 

-[집단과의 일치]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일치하려고 하지 않는 자를 위협하는 실제적 위험이 있는 경우도 있으나, 

민주주의 ,적어도 서양 민주주의에서는 사람들이 일치하도록 '강요받는' 정도 이상으로 일치하기를 '바라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치하고 싶어하는 자신의 욕구조차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기호에 따르고 있으며, 자신은 개인주의자이고 스스로의 사고의 결과로 현재의 견해에 도달했으며,

자신의 의견이 사람들 대부분의 의견과 같은 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다. 

 

만인과의 의견 일치는 '자신의' 견해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아직은 어느정도 개성을 느끼고 싶다는 욕구가 남아있어서 이러한 욕구는 사소한 차이에 의해 만족된다. 

그는 차이를 제거하려는 경향이 이와 같이 강화되는 것은 가장 발단한 산업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평등의 개념및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평등은 본래 인간이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말하면 만인은 각기 목적이고, 목적인 한에서만 동등하며 서로 수단이 되는 일은 결코 없다. 

 

작가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등의 의미는 달라졌다. 

이 사회에서 평등이라는 말은 자동 인형의 평등, 개성을 상실한 인간들의 평등을 말한다. 오늘날 평등은 일체성보다는 오히려 동일성을 의미한다. 평등은 추상적 동일성, 곧 같은 일터에서 일하고 같은 오락을 갖고 같은 신문을 읽고 같은 감정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동일성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는 이러한 비개성화된 평등이라는 이상을 설교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대집단 속에서 마찰없이 원활하게 일하도록 서로 동일한 원자적 인간이 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모두 동일한 명령에 복종하면서도 각기 자신의 욕망에 따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현대의 대량 생산이 상품의 규격화를 요구하는 것처럼, 사회적 과정은 인간의 표준화를 요구하고 이러한 표준화를 '평등'이라고 한다. 

 

...

 

분리 상태에서 생기는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서의 일치와 함께 현대 생활의 다른 요인, 곧 일상적인 노동과 일상적인 오락의 역할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간은 '평등화'되고 노동력 또는 사무원이나 관리자의 관료적 힘의 일부가 된다. 

 

그는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그가 하는 일은 이 일을 관리하는 조직에 의해 지시된다. 계급의 높고 낮음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그들은 모두 조직의 전체적 구조에 의해 지시된 일을 지시된 속도로 지시된 방식에 따라 수행하고 있다.

 

심지어 감정조차도 지시받고 있다. 쾌할함, 믿음직함, 모든 사람과 마찰없이 지내는 능력까지도.

 

오락도 그리 격렬한 방법은 아니더라도, 역시 상투적인 것이 된다. 책은 독서 클럽에 의해 선택되고, 영화는 필름이나 극장 소유자에 의해 선택되고, 광고 슬로건도 그들에게 지불을 받는다. 휴식 역시 일정하다. 곧 일요일의 드라이브, 텔레비전 연손물, 카드놀이, 사교 파티 등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월요일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활동은 일정하고 기성품화되어 있다. 이러한 상투적 생활의 그물에 걸린 인간이 어떻게 자신은 인간이고, 특이한 개인이며, 희망과 절망, 슬픔과 두려움, 사랑에 대한 갈망, 무와 분리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단 한번 살아갈 기회를 갖게 된 자임을 잊지 않을 것인가? 

(-> 작가는 인간이 집단과의 합일로 갈망을 해소하고자 하지만, 정작 변화된 '평등'이라는 의미아래 본래의 개성을 잃는 현대인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

 

- [창조적 활동]

마지막으로 창조적 활동에서는 모든 형태의 창조적 작업에서 일하는 자와 그 대상이 하나가 되고 인간은 창조과정에서 세계와 결합한다고 이야기 한다. 이것은 생산적인 일, 곧 '내'가 계획하고 만들어내고 내 작업의 결과를 볼 수 있는 일에만 해당된다. 

이러한 합일은 대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도취적 융합에서 이루어지는 합일은 일시적이다.  

완전한 합일은 대인간적 결합, 다른 사람과의 융합의 달성, 곧 '사랑'에서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 할 때 이러한 대인간적인 합일의 달성을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까?

사랑에 대해 말할 때 합일은 어떤 종류의 합일인가?

 

합일에는 공서적 합일이라는 사랑의 미숙한 형태가 있다.

이것은 임신한 어머니와 태아의 관계에서 그 생물학적 유형이다.

공서적 합일의 '수동적 형태'는 복종이다.

임상적 용어를 사용하면 피학대 음란증으로, 이러한 인간은 자신을 지휘하고 인도하고 보호하는 사람,

말하자면 자신의 생명이고 산소인 다른 사람의 일부가 됨으로써 견디기 어려운 고립감과 분리감에서 도피한다.

 

공서적 합일의 '능동적'형태는 지배 혹은 임상적 용어로는 '가학성 음란증'이다.

이러한 인간은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어 고독과 갇혀 있다는 감정으로부터 도피라려고 한다.

그는 자신을 숭배하는 다른 사람을 흡수함으로써 자신을 팽창시키고 강화한다. 

 

이 둘은 공통적으로 통합성이 없는 융합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사랑은 인간에게 능동적인 힘이다. 곧 인간을 동료에게서 분리하는 벽을 허물어버리는 힘, 

인간을 타인과 결합하는 힘이다.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감상]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의지, 노력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을 알아야 하며, 인간은 끝없는 '분리로 인한 고독, 좌절,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대답을 찾아왔고 역사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철학적으로, 분석적으로 적힌 세가지 방법 중 도취적 합입을 제외한 집단과의 합일과 창조적 활동은 나에게도 매우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특히 위에 초록색문자로 표현한 글에서, 어째서 내가 현대 사회의 직장인에게서 느끼는 이 무력함과 동일함은 모든 사람에게서 빠짐없이 느껴지는 걸까? 라는 의문에 시원한 해결을 주었다. 

이러한 무기력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당연시 되는 사회적인 단계, 즉 취업이나 결혼을 포함한 많은 것들에서 많은 사람들이이 책에서 말하는 집단과의 합일을 겪고 있는 것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반대로  자신은 인간이고, 특이한 개인이며, 희망과 절망, 슬픔과 두려움, 사랑에 대한 갈망, 무와 분리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단 한번 살아갈 기회를 갖게 된 자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월요일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활동은 일정하고 기성품화되어 있지 않고, 이러한 상투적 생활의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첫째로는 이 문장을 반드시 기억하며 살고, 

둘째로는 현재 내가 처한 상황(취업 전)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방법들에 대해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워라밸', 자율 출퇴근 같은 경우도 이와 맥락을 일부 동일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나만의 특이한 자아를 위해서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도 고민해보아야한다.

 


-[사랑은 활동인가?]

'활동'에는 외부적 목표 달성이 있고 내부적 목표 달성이라는 분류가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깊은 불안감과 고독감에 쫓겨 끊임없이 일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야망이나 돈에 대한 탐욕에 쫗겨 끊임없이 일한다.

또 어떤 사람은 야망이나 돈에 대한 탐욕에 쫗겨 끊임없이 일한다.

이 모든 경웨 사람들은 열정의 노예이고, 그들은 쫓기고 있으므로 사실 그들의 활동은 '수동적'이다. 

 

곧 그들은 '행위자'가 아니라 수난자이다.

 

한편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과 세계의 일체성을 경험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목적이나 목표도 없이 조용히 앉아서 명상을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수동적이라고 생각된다. 

사실은 정신을 집중하는 이러한 명상적 태도는 최고의 활동이며, 내면적 자유와 독립의 상태에서만 가능한 영혼의 활동이다. 

 

(작가는  사랑을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지 논제를 던지면서,  활동의 재정의부터 시작한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수동적, 능동적이라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끔한다. 이후에는 사랑을 활동이라고 하는 이유, 즉 사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임을 이야기 하며 논리를 전개한다.  - 다음 게시글에서 이어짐)


[감상]

많이 와닿았던 문장들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과정을 즐기는 나이기도 하지만,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외부적 목표달성만을 좇다보면 정신적으로 가장 많이 지치는 것 같다. 

외부목표도 있지만 내부 목표도 있다. 늘 마음을 정리하고 가다듬으면 매번 행동으로도 좋은 현상이 나타났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계속 일을 하려고 해도 되지 않을 때가 있지 않던가.

나는 이럴 때가 오면 반드시 짧게라도 휴식을 취하려고 한다. 

명상, 한 때 자주 했던 것이기는 한데, 잊지 않고 또 주말에는 한번씩 다시 하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글에서는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다" 에 대한 주제로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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